작은 수리점. 형광등 불빛 아래 부품들이 쌓여 있다. 카운터 뒤편, 수리기사 이강준(38)이 본체 케이스를 분해하며 모니터 화면을 훑고 있다. 창밖으로 평범한 오후의 골목이 보인다.
최민석(45)이 본체를 두 손으로 안고 들어온다. 어깨가 살짝 움츠러 있다.
'특별히 뭘 한 건 없다'는 말은 이 업계에서 일종의 암호어다.
번역하면 대략 이렇게 된다:
"뭔가 하긴 했는데, 당신한테는 말 못 하겠다."
강준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키보드에 어떤 흔적이 남아 있을지
이미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민석이 나가자 강준은 본체를 작업대 위에 올린다. 먼지 쌓인 케이스를 열자 팬에 먼지가 두껍다. 적어도 2년은 청소를 안 한 컴퓨터.
가게 셔터를 반쯤 내린 채 강준 혼자 작업 중이다. 하드디스크를 꺼내 다른 장비에 연결한다. 복구 프로그램이 천천히 돌아간다.
로그 파일들이 복원되기 시작한다. 강준이 조용히 들여다본다. 시간 순서대로 정렬된 기록들. 그는 거슬러 올라간다.
화요일 밤 열한 시 사십 분.
브라우저 기록에 익숙한 도메인이 보인다.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들 사이에 낀, 광고 팝업.
강준은 이 유형을 너무 잘 안다.
클릭 한 번. 그게 전부다.
그 이후 설치 로그를 따라가보면—
조용히, 아무 표시도 없이,
뭔가가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강준이 멀웨어 흔적을 추적한다. 시스템 폴더 안에 이름을 숨긴 실행 파일 하나. 설치 시각, 화요일 밤 열한 시 사십삼 분. 그는 잠시 모니터를 바라본다.
최민석과 그의 아내 박지영(43)이 함께 들어온다. 지영이 먼저 말을 꺼낸다.
강준이 카운터 위에 수리된 본체를 올려두며, 민석을 잠깐 바라본다. 0.5초. 민석의 눈이 미세하게 떨린다.
지영이 지갑을 꺼내는 사이, 민석이 강준과 눈이 마주친다. 민석의 눈에 아주 짧게 무언가가 지나간다— 감사, 혹은 안도, 혹은 수치심. 강준은 그냥 영수증을 내민다.
민석이 직접 카드를 내민다. 지영보다 먼저. 강준은 카드를 받아 단말기에 긁는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
이 오만 원에는 수리비만 포함된 게 아니다.
비밀 유지료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강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이 사람이 저 사람 옆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이 정도 이야기면 충분하다는 거,
그걸 아는 게 일의 절반이다.
부부가 본체를 들고 나간다. 문이 닫힌다. 강준은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가 다시 다음 수리 건의 기록지를 집어든다. 그 위에는 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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