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이 부품 재고를 정리하고 있다. 문이 열린다. 서도현(34)이 들어선다. 노트북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데스크탑 본체를 양손으로 안고 있다. 들어오자마자 가게 안을 한 바퀴 훑는다. 값을 매기는 눈이다.
첫 마디로 사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잘 고쳐주세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잘 하시는 거 맞죠?"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부탁이다.
후자는 검증이다.
강준이 본체를 건네받아 작업대 위에 올린다. 도현이 카운터 너머로 목을 빼며 따라붙는다.
이 유형은 말이 많다.
그리고 말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자기가 충분히 했다는 걸 먼저 증명해야,
못 고친 것이 부끄럽지 않으니까.
강준은 이런 사람을 몇 번 만나봤다.
그래서 이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이미 알고 있다.
강준이 케이스를 열고 내부를 들여다본다. 도현은 카운터에 팔꿈치를 올리고 멈추지 않는다.
강준의 손이 메인보드 안쪽으로 향한다. 동전 크기의 배터리. 잠깐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표정 변화 없이.
찾았다.
생각보다 빨리.
바이오스 배터리가 거의 나가 있다.
시스템 시각이 계속 초기화되면서
부팅 과정의 보안 인증 루프가 걸리는 것이다.
배터리 하나 교체하면 끝난다.
그런데 지금 이걸 말하면 안 된다.
이걸 더 들어서는 안 된다.
러스트가 어떻고, 커널이 어떻고,
BIOS가 어떻고— 다 듣다가 고치고 나면,
이 사람은 나중에 이렇게 정리할 것이다.
"제가 말씀드린 것들이 결국 실마리가 됐네요."
그리고 배터리 하나 갈아끼운 나는
그 실마리를 주워서 조립한 사람이 된다.
당연히 수리비가 아깝다는 얼굴이 따라온다.
강준은 이 패턴의 끝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끊어야 한다.
그렇다고 돌려 보내서도 안 된다.
수리하는 걸 옆에서 보겠다고 할 게 뻔하다.
강준이 공구를 내려놓고 허리를 편다. 서두르지 않는다.
도현이 잠깐 멈칫한다. 납득은 안 되지만 반박도 어렵다는 얼굴. 강준이 그 틈에 덧붙인다.
카페 할인은 사실이다.
건너편 사장이 먼저 제안한 거다.
손님이 기다리는 시간을 자기 가게로 데려오면
서로 좋다고.
오늘은 그 이유보다 다른 이유가 더 크지만,
그걸 설명할 필요는 없다.
도현이 노트북 가방을 추스르며 밖으로 나간다. 문이 닫힌다. 강준이 잠시 그 문을 바라보다가 돌아선다.
혼자 남은 수리점. 강준이 바이오스 배터리를 꺼낸다. 동전 크기. 교체용 배터리를 끼운다. 전원을 연결하고 부팅을 시작한다. 로딩 화면이 올라온다. 멈추지 않는다. 바탕화면이 뜬다. 강준이 몇 가지를 더 확인하고 케이스를 닫는다. 작업 시간, 이십 분 남짓.
도현이 카페에서 돌아온다. 얼굴이 좀 풀려 있다. 강준이 본체를 카운터 위에 올려둔다.
도현이 전원을 켠다. 화면이 올라온다. 멈추지 않는다. 바탕화면이 뜬다. 도현이 모니터를 한동안 바라본다.
왔다.
예상보다 빠르게.
도현이 잠깐 기다린다. 더 자세한 이야기, 어떤 부품인지, 어떻게 찾았는지. 강준은 영수증만 내민다. 도현이 카드를 꺼낸다. 잠시 머뭇거리다 긁는다.
도현이 본체를 챙겨 나간다. 문이 닫힌다. 창밖으로 그가 카페 방향을 한 번 돌아보며 걷는 게 보인다. 강준은 보지 않는다.
강준이 다음 수리 건의 기록지를 집어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적혀 있다—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원인을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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