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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나리오

그들의 박스

EP. 05 서른 장
S#1
수리점 작업대 — 오전

작업대 위에 PC 본체 하나. 그 옆에 CD 라이터가 따로 놓여 있고, 공 CD 묶음이 뜯겨 있다. 강준과 연수생 박재원(25), 송유진(23) 세 사람이 작업대를 둘러서 있다.

강준 (V.O.)
연수생이 둘 생겼다.
배우러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이건 교육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모르는 걸 가르치는 것도 교육이라면—
오늘은 꽤 좋은 교육이 될 것 같다.
강준
CD 라이터야. 뭔지 알지?

재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유진이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송유진
CD를... 만드는 거요?
강준
굽는 거야. 데이터를 CD에 기록하는 거. 요즘엔 거의 안 쓰지.
강준 — 내면

CD 라이터를 모른다는 게 놀랍지 않다.
이 친구가 태어났을 때 이미 USB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기계는 이 친구한테 유물이다.
그 유물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강준
최근에 산 거야. 처음 써봤는데 굽다가 중간에 계속 실패한대. 오전에 접수되었고.
S#2
작업대 — 연속
강준
원인이 뭘 것 같아? 각자 얘기해봐.
박재원
CD 자체가 불량이거나... CD 라이터가 불량인 거 아닐까요?
송유진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새 제품인데 초기 불량일 수 있고.

강준이 잠깐 고개를 끄덕인다. 틀린 말이 아니다.

강준
평소라면 그렇게 말했을 거야. "CD 라이터 교체하세요." 그러면 끝이야. 빠르고 깔끔하고 손님도 납득해.

강준이 CD 라이터를 한 번 바라본다.

강준
근데 오늘은 진짜 원인을 한 번 찾아보자.
강준 — 내면

손님한테는 빠른 게 맞다.
지금은 한 번쯤 끝까지 파봐야 하는 순간이 있음을 전하고 싶다.

S#3
작업대 — 논의 중
강준
문제는 CD 낭비야. 한 번 굽다가 실패하면 그 CD는 끝이야. 재활용 안 돼. 그러니까 가능성 높은 가정부터 순서 세워서 최소한만 시도해보자.

세 사람이 논의한다. 순서가 정해진다.

시도 순서 — 가능성 높은 것부터
1. 다른 공 CD로 교체 후 재시도
2. 다른 CD 라이팅 SW 2~3종으로 재시도
3. 다른 PC에 CD 라이터 연결 후 재시도
4. 윈도우 / 드라이버 업데이트 확인
강준
CD 30장짜리 하나 사다 놓고. 내일 결과 얘기해줘.
S#4
수리점 — 다음날 아침

재원과 유진이 들어온다. 얼굴에 피로가 있다. 재원이 빈 CD 케이스를 내려놓는다. 서른 칸이 전부 비어 있다.

박재원
다 날아갔어요. 서른 장 전부요.
송유진
다른 PC에도 연결해봤는데 똑같았어요. 이건 그냥 CD 라이터 불량 아닌가요?
강준
SW 업데이트는 다 확인했어?
박재원 / 송유진
네.

강준이 직접 PC를 켠다. 윈도우 버전. 확인한다. 최신이다. 드라이버 목록을 연다. 항목들을 하나씩 내려간다. CD 라이터 드라이버. 멈춘다.

강준 — 내면

최신이 아니다.

강준이 두 사람을 본다. 두 사람이 강준의 모니터를 본다. CD 라이터 드라이버 — 업데이트 필요.

강준
손님이 드라이버까지 다 했다고 했지?
박재원
네. 그렇게 말했어요.
강준
CD 라이터 드라이버는 안 돼 있네.

두 사람이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아무 말이 없다.

강준 — 내면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손님 입장에서는 다 한 게 맞다.
윈도우 업데이트. 몇 가지 드라이버.
CD 라이터 드라이버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 했다고 말한 거다.
틀린 말인데 틀린 줄 모르는 말.

이런 말들이 생각보다 많다.
방금은 저들도 그렇게 말했다.
다 확인했냐는 질문에 '네'라고.

강준이 CD 라이터 드라이버를 업데이트한다. 공 CD 한 장을 넣는다. 굽기 시작. 잠깐. 오류. 실패. 강준이 CD를 꺼낸다. 버린다. 드라이버가 원인은 아니었다.

강준
드라이버는 아니야. 근데 어쨌든 확인은 해야 했어.
강준
얘기했던 것 말고 다른 가정이 나온 게 있어? 해보지 않은 게 뭐가 있는지.

재원과 유진이 서로를 본다. 잠깐. 그리고 동시에 강준을 본다.

박재원
...없어요.
강준 — 내면

서른 장.
공 CD 서른 장이 날아갔다.
새 CD 라이터 하나가 삼만 원이다.
진단 비용이 장비 교체 비용을 이미 넘겼다.

원인을 못 찾은 것.
그리고 둘이서 가정을 더 많이 내놓지 못한 것.
그게 더 아쉽다.

송유진
솔직히 이해가 안 가요. 다른 PC에서도 똑같이 실패했잖아요. 그냥 CD 라이터 고장난 게 맞지 않나요?
박재원
맞아요. 환경을 바꿔도 증상이 같으면... 공통 분모는 CD 라이터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강준이 대답하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논리적으로는. 그런데 찝찝하다. 본능적으로.

강준 — 내면

이 느낌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
서랍을 닫았는데 뭔가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

이럴 때 포기하면 나중에 후회한다.
항상 그랬다.

강준
화이트보드 같이 보자.
S#5
수리점 화이트보드 앞 — 연속

커다란 화이트보드. 어제 논의한 내용들이 적혀 있다. 세 사람이 나란히 선다. 재원과 유진은 읽는다. 강준은 본다.

완료
1. 다른 공 CD — 실패 (×12장)
2. 다른 라이팅 SW 3종 — 실패 (×14장)
3. 다른 PC에 연결 — 실패 (×4장)
4. 윈도우 / 드라이버 업데이트 — 최신 확인
업데이트 항목
윈도우 업데이트 ✓
드라이버 업데이트 ✓
라이팅 SW 업데이트 ✓

강준의 시선이 보드 위를 천천히 훑는다. 업데이트 항목들이 적힌 칸. 윈도우. 드라이버. 라이팅 SW. 세 줄. 강준이 멈춘다.

강준 — 내면

업데이트.
변화를 줘서 반응을 보는 것.
우리가 한 건 전부 그거다.

윈도우 업데이트.
드라이버 업데이트.
라이팅 SW 업데이트.

그런데 잠깐—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는 건 당연하다.
드라이버도 업데이트된다.
그런데 하드웨어도 업데이트가 된다.
하드웨어 안에 박혀 있는 작은 소프트웨어.

펌웨어.

CD 라이터에도 펌웨어가 있다.

펌웨어. CD 라이터의 펌웨어 업데이트.

강준이 마커를 집어 화이트보드에 쓴다. 재원과 유진이 강준의 손을 따라간다. 그리고 쓰인 것을 읽는다. 두 사람이 동시에 강준을 본다.

박재원
CD 라이터에... 펌웨어가 있어요?
강준
찾아봐.
S#6
작업대 — 잠시 후

유진이 노트북으로 검색한다. 제조사 사이트. 지원 페이지. CD 라이터 모델명을 입력한다. 화면을 본다. 그리고 재원을 본다.

송유진
...있어요. 펌웨어 업데이트 파일이요.

안내대로 펌웨어를 받아 설치한다. 진행 바가 올라간다. 완료. 공 CD 한 장을 넣는다. 굽기 시작. 아무 오류 없이. 완료. CD가 나온다.

세 사람이 CD를 본다. 아무도 말이 없다. 잠깐.

박재원
...됐다.
S#7
수리점 — 잠시 후
강준 (V.O.)
CD 라이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새 CD 라이터를 추천했으면 어땠을까.
손님은 삼만 원짜리를 하나 더 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똑같은 증상이 났을 것이다.
새 제품도 펌웨어는 구버전이니까.

강준이 두 사람을 바라본다.

강준
아까 드라이버. 손님이 다 했다고 했잖아.
송유진
CD 라이터 드라이버는 빠져 있었죠.
강준
손님이 거짓말한 게 아니야. 자기가 아는 드라이버는 다 했을 거야. CD 라이터용 드라이버가 따로 있다는 걸 몰랐을 뿐이고.

두 사람이 듣는다.

강준
손님들이 하는 말 중에 이런 게 많아. "다 해봤어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갑자기 그랬어요." 틀린 말이 아니야. 근데 정확한 말도 아니야. 그 사람 기준에서 한 말이니까.
강준 — 내면

손님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지금은 앞에 있는 두 사람의 말도 마찬가지다.

강준
그러니까 손님 말을 듣되, 거기서 멈추면 안 돼. 직접 확인해야 해. 오늘처럼.

재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유진이 뭔가를 적는다.

강준
새 CD 라이터 하나가 삼만 원이야.
강준
우리는 이 PC 맡는 순간부터 최소 오만 원 받아왔어. 근데 오늘은.

강준이 멈춘다. 빈 CD 케이스를 한 번 본다. 서른 칸. 전부 비어 있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을 본다.

강준의 질문
얼마를 받아야 할까?
강준 (V.O.)
수리비는 기계를 고친 값이다.
그런데 때로는 고치는 것보다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 게 더 어렵다.
그 값은 어떻게 매기는 걸까.

두 사람은 아직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오늘의 수업이다.
— EP. 05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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