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나리오
그들의 박스
EP. 06
일의 끝
강준이 출근한다.
문을 열었더니 재원과 유진이 작업대 앞 의자를 붙여 앉아
모니터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킥킥거리는 소리.
두 사람이 동시에 뒤를 돌아본다.
웃음이 멈춘다.
박재원
어... 어제 수리 완료한 컴퓨터에 있던 영상이요. 실수로 열렸는데.
강준이 의자를 하나 끌어당겨 두 사람 사이에 앉는다.
강준
두 사람도 스마트폰 고장 나면 어딘가에 수리 맡기겠지?
잠깐의 침묵.
재원이 먼저 모니터를 돌린다.
유진이 창을 닫는다.
두 사람 다 강준을 보지 않는다.
강준 (V.O.)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생기는 게 있다.
열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보는 눈.
그게 생기기 전까지는 실수를 한다.
실수인지도 모르고 하는 실수를.
연수생들은 아직 그 눈이 없다.
그래서 가르쳐야 한다.
말로는 안 된다.
이런 일들을 한 번씩 거쳐야 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강준이 어제부터 들여다보던 PC 쪽으로 간다.
본체에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다.
접수 메모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의 실행이 많이 느림.
세 사람이 모니터 앞에 모인다.
강준이 지금까지 확인한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CPU 사용량. 메모리. 네트워크.
프로세스 목록이 화면에 펼쳐진다.
강준
악성코드인 것 같은데. 근데 이상한 점이 있어.
강준
이 PC. 내가 손 대기 전에 손댄 사람 있어?
강준 — 내면
본체 내부가 깔끔하다.
그런데 파일들은 엉망이다.
보통 둘 다 엉망이거나 둘 다 깔끔하다.
본체를 청소하는 사람이 파일을 정리하고,
본체를 청소하지 않는 사람이 파일들을 아무렇게, 바탕화면에 배치해 두는 게 대부분이다.
이건 다르다.
안이 깔끔하게 청소됐다는 건—
다른 사람이 이 PC를 열었다는 뜻이다.
강준이 전화기를 집어 든다.
강준
저희에게 맡기시기 전에, 다른 곳에 맡긴 적이 있으신가요?
고객 (전화)
아, 네. 실은 컴퓨터가 아예 켜지질 않아서 맡겼던 곳이 있는데... 가지고 와서 며칠 후에 쓰려다 보니 프로그램들이 느려서 지금 수리점에 연락드린 거예요. 그 수리점이 하필 문을 닫아서.
고객 (전화)
어... 영수증을 보니까 딱 그날이네요. 어떻게 아셨어요?
강준
네, 알겠습니다. 확인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강준이 전화를 끊는다.
재원과 유진의 눈이 강준을 향해 있다.
강준이 날짜를 먼저 말한 것이 이상하다.
강준
이 PC에서 문제의 프로그램이 설치된 날이 4월 15일이야. 다른 수리점에 맡겼던 날이랑 같고.
강준
본체 속 청소가 깔끔하네. 파일들이 정리된 모습이랑은 완전히 달라. 보통 둘 다 엉망이거나 둘 다 깔끔한 게 대부분인데. 그래서 물어본 거야.
박재원
와... 그럼 그 수리점에서 악성코드를 심은 거네요?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 일은 윤리적, 도덕적 자질이 꽤 많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강준 (V.O.)
강준
악성코드라고 했지만 잘 알려진 악성코드가 아니야. 감지 도구로는 안 잡혀.
강준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한다.
강준
처음엔 나도 이게 뭔가 해서 시간을 들인 건데. 이 놈은 PC가 켜지고 나서 항상 실행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그러다가 내가 무언가를 실행하면 이놈이 잡아먹는 CPU, 메모리, 네트워크 사용량이 함께 늘어.
강준
그래. 다른 SW를 감시하면서 데이터를 어딘가로 보내는 게 아닌가 싶어.
강준
와이파이를 연결했을 땐 시스템이 계속 안정적이었어. 문제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는데. 와이파이를 잠시 껐더니 어떤 프로세스가 프로세스 목록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는 거야.
강준
내 생각엔 이 악성코드의 버그일 거야. 네트워크가 끊긴 상황에 대비를 못 한 거지. 연결이 끊기니까 오류가 생겨서 프로세스가 죽고, 그걸 감시하는 다른 프로그램이 다시 살리고, 또 죽고, 또 살리고.
강준 — 내면
만든 사람도 실수를 한다.
나쁜 의도로 만든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
허점이 있다.
그 허점이 이걸 찾게 해줬다.
박재원
그럼 데이터가 어디로 나가는 건지도 알 수 있을까요?
강준
응. 가능할 거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송유진
이거 심각한 일이잖아요. 바로 신고할 수 있도록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강준이 잠깐 멈춘다.
의자를 당겨 앉는다.
두 사람도 따라 앉는다.
강준
IP 주소를 찾고, 위치를 파악해서 신고할 수는 있어. 근데 내가 찾은 이 프로그램이 정말로 내가 말한 그 나쁜 일을 한다고 확정 지을 수 있을까?
박재원
그... 아까 말씀하신 것들로 충분하지 않나요?
강준
내가 말한 건 다른 프로세스가 실행될 때 이 프로그램이 반응한다는 거야. 그 반응이 정말로 어떤 나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려면 프로그램을 면밀하게 분석하거나 패킷을 들여다봐야 해.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지?
강준
그리고 그 일을 잘하는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하는 일일 수도 있어. 또 하나. 이 프로그램이 수리점에 맡겼던 날 설치됐다고 했는데, 이 컴퓨터 주인이 직접 설치한 것일 수도 있잖아.
두 사람이 잠깐 말이 없다.
강준 — 내면
모든 가정들에 구멍이 있다.
본체 내부가 깔끔했다.
그래서 다른 수리점을 떠올렸다.
설치된 날짜가 일치했다.
그래서 그 수리점을 의심했다.
그런데 이게 다다.
의심이 확신이 되려면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걸 내가 여기서 다 할 수 있는가.
해야 하는가.
그리고—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강준
이 가정의 구멍들을 모두 확인하는 것. 모든 가정들을 일일이 검증하는 것. 그래서 최종 결과를 이 컴퓨터 주인에게 보고하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면...
강준이 모니터를 한 번 바라본다.
강준
다른 프로그램들의 실행을 느리게 만드는 그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주인에게 돌려주면 그만일텐데.
재원과 유진이 서로를 본다.
이번엔 강준이 답을 주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묻고 있다는 걸.
열린 질문
이 일의 끝은 어디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은 같은가.
유진이 일어나 나간다.
재원이 모니터를 바라본다.
강준도 모니터를 바라본다.
프로세스 목록이 화면에 가만히 떠 있다.
강준 (V.O.)
커피를 사러 나가는 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좋은 신호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된다.
기계를 고치는 것보다 어려운 게 있다는 것.
어디까지 고쳐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이 늘 깔끔할 수 없다는 것도.
— EP. 06 끝 —